즐거움의 경험 · 건강한 습관

변화에 대한 갈망

나의 변화
대학 시절인 79년 여름, 오산리 금식기도원에서 3일간 금식 기도를 했다.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3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보통은 무궁화호 열차를 타는데, 그날은 몸 생각을 하여 조금 비싼 새마을호를 탔다. 무궁화호 열차에서는 시끄럽게 떠들며 휴지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이, 새마을호에서는 모두 조용하고 간혹 소곤거리며 복도도 깨끗했다. "아, 같은 사람들이 환경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잠을 깬 다음 날 아침,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음성이 있었다. 내가 앞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자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너무 생생해서 알아보니, 음대생은 일반 학과로 편입이 안 되어 예비고사를 다시 쳐서 교육학과로 입학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나는 정말 교육자가 되었다. 그것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음악치료’ 대학원의 교수가 된 것이다.

금식 기도에 흥미를 느낀 나는 그해 12월 28일부터 일주일간 가덕기도원에 들어가 나 자신이 변화되길 기도했다. 나의 생각, 나의 모습, 모든 것이 싫었다. 성경 속 요셉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었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아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요한아,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사람이 너였구나! 내가 그렇게 소원하던 기도의 응답이 바로 너였구나.”

클라이언트의 변화
메트로주립병원에 근무할 때, 한 베트남 환자가 직원과 옆 환자들을 반복적으로 폭행해 의사는 쏘라진 250mg을 처방했다. 약에 취해 종일 침대에 뻗어 있는 그를 보며 연민의 감정이 일어났다. “저 이도 사람인데요, 어찌 짐승처럼 저렇게 버려둘 수 있을까...”

그래서 그가 평소 좋아하는 콜라를 가까이 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다가갈 수 없어 2~3m 떨어진 곳에 놓았지만, 3주쯤 지나자 바로 옆에 놓을 수 있었고, 얼마 후에는 그의 손에 직접 쥐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다른 직원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두려워했기에, 전직 권투선수로 덩치가 컸던 그 환자에게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그를 자유롭게 하는 데 약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그 환자가 베트남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얼마 후, 그 직원이 간호실에 들어와 “He is a good man.”이라는 말을 환자가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는 퇴원하여 사회로 복귀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구든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다고 느끼게 되면, 결국 따라 변하게 된다는 것을! 동료 직원들은 이 사건을 ‘메트로의 기적(Miracle of Metro)’이라 불렀다.

대학원생들의 변화
음악치료 15주 특강에 매 학기 600-800여명의 학생이 수강했고, 음악치료대학원의 입시 경쟁률도 10:1 정도였다. 그렇게 어렵게 입학한 대학원생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음악치료 이야기가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문다’ 할 정도였다.

입학 때부터 학생들과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음악치료’라는 사명서를 함께 읽었고, 모임 때마다 “한국 음악치료,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외쳤다.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나온 한 학생의 아버지가 졸업식 날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음악치료대학원에 1,000만 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딸이 이 대학원에 입학한 뒤, 그렇게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며, 너무 감사한 마음에 도네이션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음악치료를 통해 열정적인 삶으로 변화했다. 어느 가을, 인턴들을 격려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의 노블카운티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근무 중인 졸업생의 세션에도 참관하게 되었다. 세션 중 나를 소개한 탓인지, 마친 후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이렇게 말했다. “문 선생님에게 음악치료를 가르쳐주셔서, 우리가 음악치료를 받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음악치료 현장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음악치료를 통해 안식을 누리고 있으리라 믿는다.